[5월 6일] 어설픈 동생으로 인한 나비효과

나는 그저 동생한테 노트북과 속옷 좀 몰래 가져다 달라했을뿐인데

이 날의 사건 때문에 나는 지금, 5월 23일까지 가출을 지속하고 있다. 

집에서 나올 때 잘 때 입는 옷, 양말 한 켤레, 충전기, 지갑, 에코백에 들어있던 정신과 약과 갤럭시탭이 다였어서

바깥 생활을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5월4일에 동생한테 노트북이랑 속옷 좀 몰래 챙겨서 군자역에서 전해달라고 했을 뿐인데

동생이 집에서 나오는 과정에서 엄마한테 걸렸다. 

나는 그 때 당시 전해받으러 군자역으로 버스타고 가고 있는 과정이었고

엄마랑 말 섞으면 또 내가 위험한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두 번 온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동생한테 이제 출발한다고 문자가 왔고

동생을 만나서 얘기를 들으니 엄마가 동생한테 누나가 어디서 지내는지 알아오거나 설득을 해오거나 결과물을 가져와라는 식이었던 것 같았다.

동생이 전해줄 얘기는 아닌 거 같아서 내가 알아서 할테니 넌 그냥 가라 하고 물건을 전해받고 동생을 보내고

호텔로 가는 버스 안에서 한참동안 창밖을 내다보며 멍을 때렸다.

내가 이 상황을 엄마한테 설명한다고 해서 될 일인가.

공황도 내 성격탓이라는 엄마한테 내가 뭘 어떻게 얘기를 해야하는 건가.

나는 당장 원룸텔이라도 들어가고 나한테 미련도 없어보이는 가족이랑 연을 끊어야하나 생각중인데

설명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내가 카톡을 주면 나는 오는 답장에 안 흔들리고 괜찮을 수 있을까.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한 것은 전해받은 노트북을 켜서 메모장에 내가 할 말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지금의 나는 말도 왔다갔다 하고, 생각도 이리저리 뛰고, 건망증에, 간단한 산수도 한번씩 틀리는 상태라서

메모장에서 여러번 수정이 필요할 것 같았다. 

메모장에 내가 할 말을 정리하면서 오랜만에 미친듯이 울었다.

미사대교를 향해 걸었던 그 날들이 생각나면서..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는 나한테 이렇게 메모장에 정리하면서 수정하는게 무슨 소용일까 하면서...

긴긴 글을 썼다.

사실 메모장에 쓰면서 느꼈다.

예전으로 돌아가기에는 내가 상태가 너무 안 좋아졌구나. 예전만큼 가족에 대한 애착은 이제 안 돌아올 수도 있겠구나.

이번 일을 계기로 나는 가족한테 이제 어떠한 것도 기대를 안하겠구나..

 

-엄마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숨 못 쉬겠어서 머리가 계속 극단적으로 돌아가서

안되겠다싶어서 나온거야. ..-

-내가 차라리 죽으면 그제서야 엄마가 인정해줄까. 이마저도 엄마는 그냥 내가 투정부린다고 생각하겠지...? 내가 그저 감정적이고 그저 세상 쉽게 살려고 한다고.-

-지금 내 상태가 정상은 아니니까 조금만 기다려주면 안될까. 나 그래도 20대 후반이고 내 앞가림 알아서 하니까 그냥 조금만.. 기다려줘-

-이 문자 마저도 납득 못하겠고 그래도 집에 들어와라한다면 난 이제 모르겠어.. 엄마랑 대화하는 방법을..-

 

이 문장들을 포함해서 엄마한테 보냈다.

보내놓고 휴대폰을 계속 쳐다봤다. 

전화오면 나는 또 심장이 멈출 거 같겠지? 오늘 나는 밤에 잠이 들 수 있을까?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

답장이 왔다. 

-엄마가 너의 힘든 점을 몰라준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욱 널 괴롭히는 것 같아 답답하다-

지금 다시봐도 제일 눈에 띄는 문장이다.

예전의 나 같았으면 저기서 대화를 더 이어나갔을 거 같다. 

하지만 나도 이제 기대하는바가 없기 때문에 더이상 설명할 필요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대장군 같은 우리엄마는 힘든 점을 알아준다고 하더라도 상대가 죽거나 내가 죽거나 둘 중 하나는 끝나는 순간까지

노력해야한다고 생각하는 타입이기 때문에. 그 과정이 어떠한지는 상관없이.

나는 그 과정에서 무너진다는 게 느껴지면 빨리 인정하고 항복깃발을 올리는 타입이라면 엄마는 본인이 마지막 힘까지 다해서

끝을 봐야하는 타입이기 때문에 내가 그저 약하게 생각한다고 생각할거다.

그래서 저 말이 와닿지 않았다.

그리고 아마 힘든 점을 잘 알지도 못할거다.

공황증세, 우울증을 이해하는 사람은 겪어본 사람만 안다.

 

그래서 나는 답장을 나한테 초점을 맞추지 않고

동생한테 맞추었다.

동생이 만약에 나랑 비슷한 일이 생기면 그러지말라고.

낭떠러지에 간신히 서있는 사람 밀어버리는 꼴이라고.

 

그러고 나서 돈은 있냐고 카톡이 왔고

지금은 괜찮다고 하니 더이상의 답장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