𝕄𝕖𝕝𝕒𝕟𝕔𝕙𝕠𝕝𝕚𝕒 𝔻𝕚𝕒𝕣𝕪

엄마 때문에 상처 받고 엄마 때문에 집을 나오게 된게 큰데 몸이 안 좋다는 말 한마디에 집 나오고 나서 단 한번도 안하던 전화를 본능적으로 하는 나를 보고 '어쩔 수 없나보다 나도..' 싶었다. 어디가 아픈건지, 얼마나 아픈건지, 병원은 간 건지, 원하면 외래 잡을 수 있게 친구한테 물어보겠다던지... 분명히 미워하고 원망스럽고 피하고 싶었는데...

상담치료를 받기로 결정을 내렸다. 오늘 의사선생님께 말씀드렸고 우선 3주동안 매주 진료보기 전에 상담을 먼저 받기로 하였다. 가격때문에 상담이 이제까지 망설여졌지만 필요할 것 같았다. 내 자신의 개조가 필요한 거 같았고 앞으로 내가 가족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내 마음을 달리 먹을 때가 된거 같다. 사실 이전에는 수면때문에 매주 새롭거나 증량된 약에 적응하느라 상담은 생각도 못했는데 이제 수면이 얼추 잡힐거라고 생각이 드니 상담이 생각이 났다. 상담선생님이 여자분이라고 들었는데 과연 어떨지... 3주치 선결제라서 무를수도 없고 제발 좋은 선생님 걸리게 해주세요.

코르티솔 수치는 아침에 높아졌다가 낮 동안 내려간다. 그러나 우울증 환자의 경우 수치가 종일 높은 상태로 남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코르티솔의 생성을 억제해야 할 억제 회로에 이상이 생겨서 그런 것이며, 대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느끼는 급격한 동요가 우울증 환자들의 경우 낮까지 계속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일 수 있다. 앤드류 솔로몬의 『한낮의 우울』 이전에는 내가 왜 아침마다 미칠듯이 정신이 흔들리는지 몰랐는데 책을 읽으면서 알았다. 아침이 싫어지고 밤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아침에는 아침약 먹기전이라 너무 힘들고 한낮에는 약이 제일 많이 돌 때라 그나마 괜찮고 오후 8시쯤이 내가 제일 살만한 것 같다. 아침형 인간이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너무나도 싫어졌다. 눈 떴으면 한 9시정도여서 바로 약을 먹을 수..

약 한 번 잘못 먹은 여파가 이렇게 클 줄 몰랐다. 오늘 새벽 2시부터 잠을 못 자고 계속 각성상태에 있다가 오후 3시쯤 넘어서 친구O와 카페에 있을 때 공황이 왔다. 심장이 빨리 뛰는 것 같았고 책을 읽고 있는 내 시야가 여러 차례 흐려졌고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이대로 있으면 그 자리에서 무너질 것 같아서 가지고 다니던 PRN 약을 먹었다. 4시간 정도는 괜찮았다. 하지만 그 후 갑자기 밀물처럼 쓸려오는 불안. 시야가 검게 변하는 것 같았고 과호흡이 왔다. 눈물이 미칠듯이 흘렀고 괴로웠다. 아무도 내게 곁에 없는 것 같고 낭떠러지에 매달려 있는 기분이다. 눈물이 멈추지를 않는다. 무섭다. 약 한 번 잘못먹었다고 이때까지 괜찮아지고 있었던 내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무섭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온다. 분명히 약을 먹기 전까지 잠이 슬슬 오는 상태였는데 왜 약을 먹고 나서 2시간만에 깬 것인가. 아침약을 먹었기 때문 ^^.. 어제 자몽을 먹어가지고 안그래도 칼슘섭취량 부족할텐데 심장약이랑 같이 먹으면 안 좋을 거 같아 아침약을 스킵했더니 자연스레 자기전에 약을 확인도 안하고 아침약을 먹었다. 약 봉지 뜯기는 순서대로 먹는다고. 어쩐지... 이렇게 심했던 적은 없었는데... 바보짓했다. 우울증 걸리면서 바보된 거 같다.

잠에 든지 세시간만에 또 깼다. 깨자마자 한숨부터 나오다가 그냥 이 시간을 즐기기로 했다. 나는 당장 내일 데이근무를 앞둔 간호사도 아니고 내일 아침에 약속이 잡혀있는 것도 아니다. 마음 편하게 먹으면 된다. 이 새벽의 고요함을 즐기다가 잠이 오면 자는 것이고 오지않으면 책을 읽으면 된다. 원래 가족내에서 유명하던 잠만보였어서 그런지 잠이 정말 신경이 많이 쓰였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할머니라고 불릴만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아침형인간이었다. 나의 원래 모습이 너무나도 잠을 잘 자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잠 때문에 요 몇달간 계속 스트레스 받았다. 이제는 마음가짐을 달리 먹어야겠다. 이전에는 누리지 못했던 새벽의 고요함을 누려야겠다. 간간히 들리는 새벽의 앰뷸런스 소리말고는 나를 방해하는 것이 없다. 마..

제대로 잔 날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난다. 수면유지장애에 시달리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약을 바꿨지만 깨는 건 여전했었다. 하지만 오늘. 드디어 오늘. 잠에 든 후 눈을 떴을 때 그 시각이 새벽대가 아닌 오전 8시 가까이였다. 정말 너무 행복했다. 커피금지령이 정말로 통한건지, 아님 약이 이번에는 정말로 나한테 맞는 약이었는건지 모르겠지만 행복하다. 제발 내일도 내가 일어났을 때도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오늘 집 나온지 거의 한 달하고도 보름만에 집을 갔다왔다. 어제 일방적인 안부카톡을 친구JY의 조언으로 보내고 엄마가 집 비워줄테니 필요한 거 챙겨가라 해서 오전에 갔다. 동생이 부담스러워할까봐 '집에 들어갈거니까 부담스러우면 알아서 나가있어. 나는 상관없으니까.' 라고 보내고 역에서 마을버스에 올라탔다. 익숙한 마을버스, 익숙한 차창밖의 동네인데 왜 이렇게 심장이 두근대는지. 버스를 내려서 아파트 공동현관문을 열 때, 숫자를 기억해내지 않아도 몸이 비밀번호를 기억하고 있었다. 심장이 제일 두근댔던거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였던 것 같다. 심장이 존재감을 최대한으로 뽐내며 나를 괴롭혔다. '혹시나 집에 누구라도 있으면 어떡하지?' '그럼 나는 무슨 반응을 해야하지?' '뛰쳐나와야하나?' 엘레베이터를 내려..

오랜만에 정말 꿀잠을 잤다. 무엇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단순히 약이 바뀌어서인지, 아님 어제 너무 돌아다녀서 졸도해서 그런건지. 무엇이 됐던간에 오랜만에 꿀잠을 잘 수 있어서 좋았다. 새벽에 안 깨니까 자기전약이 아무리 쎄더라도 아침에 피곤하지가 않았다. 정말 말 그대로 상쾌한 아침이었다. 옆 방이 새벽 5시 넘어서 보이스톡만 안하면 더 행복할 것 같다.

친구 JY의 권유로 연 끊을 거 아니라면 선톡을 해라해서 살아있다는 카톡을 길게길게 풀어서썼다. 무엇을 했고, 무엇을 봤고, 지금 상황은 어떻고, 약은 잘 먹고 있고 등을 길게 풀어서써서 보냈다. 마지막엔 여름 더위 조심하고 건강 챙기라는 말과 함께. 우리집에서 엄마 건강 생각하는 사람은 항상 나였기 때문에. 그렇게 보내고 뮤지컬을 관람하면서 잊고 있었다. 뮤지컬을 보고 폰을 켜보니 와 있는 답장. 엄마가 금욜까지 오전에 집을 비울테니 필요한 거 있으면 챙겨가라는 답장. 어느샌가부터 엄마는 언제 들어올건지에 대해 묻지 않는다. 어디에 있는지도 묻지 않는다. 그저 필요한 거 있으면 챙겨가라고 얘기한다. 날 포기한 걸까 아니면 나를 이해해줄려고 노력하고 배려하는 과정인걸까.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톡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