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일] 운수좋은 날

아침부터 일어나 전시를 보고 기분이 좋았다.

전시장에 사람도 별로 없었고 전시 연출도 알찬 구성이어서 좋았다.

우연히 발견한 전시였는데 요몇년간 본 전시 중 제일 마음에 들었따.

전시를 재밌게 나름 알차게 본 거 같아서

기분 좋아서 오랜만에 밥도 사먹었다.

오랜만에 채소 듬뿍인 불고기비빔밥.

맛있었다. 다 먹었다.

밤에 먹는 약을 바꾸고 나서 두통이 계속 나고 있는데 밥 먹고 정신과약이랑 타이레놀은 먹었다.

타이레놀은 먹고서라도 이렇게 외출해서 알차게 더 있다 호텔로 가고싶어서.

따뜻한 밀크티를 먹고 창 밖을 바라보며 기분이 좋았다.

코엑스 스타필드몰을 구경하면서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너무 기분이 좋았던 걸까.

호텔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엄마한테서 톡이 왔다.

"집에서 지내는 게 어떻겠니 
너 혼자 지내는 것이 계속 되는 게 더 나을 것 같이 생각들진 않는데"

라고.

나 혼자 지내서 지금 이렇게까지 좋아진건데..

의사쌤도 집 밖에서 상태가 지금 훨씬 나은 거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물론 저 말을 왜 하는지 안다. 불안해서. 밖에서 생활하니까 불안하기도 하고 밖에서 제대로 먹고 다닐리 없으니까.

안다. 걱정해서 나온 말인거. 하지만 애초에 내가 밖에 나온 이유가 집 때문이다. 

엄마가 그걸 모르나? 모르지는 않을텐데.. 내가 집에서는 숨 막혀서 나왔다고 전에도 카톡했었는데..

아니면 내 상태를 이해를 용납 못하는 건가? 

그래서 내가 되물었다.

"어떤 면에서?" 라니까 "여러모로" 라고 답장이 왔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 내가 지금 상태로는 더 나빠질거라 생각하는건지..

왜 애초에 집을 나왔는지 이전에도 설명해줬는데

도대체 나는 어디까지 말을 해야하는건지..

말을 한다고 나를 이해할 수는 있을런지..

나의 의견, 나의 입장은 이해하지 못하고 들어주지 않는다는 걸 처음에 퇴사 얘기 했을 때도 느껴서

더이상 내 의견을 표출하는 걸 포기했다.

말해봤자 결국엔 엄마는 엄마가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엄마가 생각하는 방향이 옳다고 생각할테니까.

그래서 나는 전문가의 말을 빌려 내 자신을 방어하기로 결심했다. 

"의사쌤이 지금은 나와있는 게 나한테 좋은거 같다고 했어 나도 그렇게 느끼고있고"

"언제까지 그래야 한대?"

언제까지라.. 우울증이 기한이 정해져있는 병이었던가.

당장 나도 나아질지 안 나아질지 조바심이 나고 하루에도 몇 번이고 기분의 업다운이 반복하는데

왜 재촉하는 말을 할까.

딸이 우울증 걸린 상태인걸 알면 적어도 우울증 걸린 사람한테 어떤 말을 하고 어떤 말을 하지 말아야하는지는 찾아볼 수 있는 거 아닌가? 조금이라도 찾아보면 다 나올텐데... 왜... 나한테 저런 말을 하는 걸까...

"의사쌤은 내가 에너지가 생길때까지 . 그리고 단기적인 목표로 독립하는 거를 자기는 추천한대. 그리고 아직도 불안정하다 생각해서 일주일에 한번씩 병원에 가는 거고. 나 엄마 맘 편해라고 집에 들어갈 생각 없어."

의사쌤이 단기적인 목표로 독립하는 거를 추천한다는 거는 정말 말 안하려고 했었다.

의사쌤이 보기에도 나는 집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너무 크다는 거니까. 

내가 저 말을 가족에게 하는 순간 어쨌든 가족은 충격을 먹거나 상처를 받거나 마음이 편하지는 않을테니까.

다른 말은 해도 저 말은 끝까지 안하려고 했었다.

내가 나중에 사라지게 되면 나만 사라지면 되지 굳이 상처를 주고 사라질 필요는 없으니까..

물론 안 사라질려고 약을 먹고 있지만.. 혹시나.. 상황이 안 좋아지면..

 

나 오늘 정말 행복했었는데... 행복했었는데.. 매일 행복할 때마다 항상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이 행복이 또 깨지면? 그 때 나는 괜찮을까? 하는 불안.. 이 행복이 유지되지 못하겠지? 행복은 나한테 오래 남아 있지 못하는 감정이라고 느껴져서..

역시나 그걸 증명하듯 오늘도 나는 행복하게 하루를 마무리 할 수가 없었다.

어쩐지 아침부터 운수가 좋다고 생각이 들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