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9일] 비참하다

 

 

 

 

 

큰 맘 먹고 뮤지컬을 보러 왔는데

뮤지컬 보기 2시간전에 엄마로부터

'일요일에 백숙 먹으러 와라'라는 문자를 받았다.

이 문자 오기 몇 시간 전에는 아빠로부터 '집에 자주 들러라' 라는 문자도 받았다.

부모님이 같은 날에 짠 것 마냥 이러니

너무 화가 났다.

너무 울고 싶었다.

나는 마실을 나온 것도 아니고,

자취를 하는 자취생도 아니고,

아파서, 나아지기 위해서, 그리고 내 우울이 가족한테 피해가 안 갔으면 해서.. 그래서 이 나이가 되어서 가출을 한건데

아무렇지 않게 집에 들러서 백숙을 먹으라니.

볼드모트 마냥 내 병, 내 질환에 대해서는 언급이라도 하면 안되는 마냥

'요즘 좀 어때?'

'백숙 먹으러 오지 않을래?' 도 아니고

오라니.

와라니.

그래서 너무 화가 나고 억울해서 답장 했다.

'나 정신질환 환자야. 그것 때문에 치료 받고 있고. 급한 일 아니면 집에 들어갈 일 없을거야. 이런 문자 보내지마.'

라고 보냈다.

그랬더니 온 답장.

'이런 문자가 널 힘들게 하니'

정말 몰랐던 걸까 아니면 모르는 걸까

가족이 내가 상담치료를 받는 이유이고

내가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이유인걸. 예전처럼 이젠 돌아갈 수도 없겠지만.

그래서

'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일상생활을 자연스럽게 보낼 수 있는 것처럼 이런 식으로 문자보내지마. 나 정신이 아픈 사람이고 약과 상담으로 버티는 사람이야. 그런 사람한테 '올래?'도 아니고 '오너라'라고 하면 당연히 나는 힘들어'

라고 보냈다.

그리고 온 답장이 내가 나온 이후

처음으로 받아본 사과였다.

'그랬구나 몰랐다 미안하다'

'언제쯤 일상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으니?'

'원인이 무어라 하더나 의사는'

미안하다는 말로 울컥의 눈물과 동시에 분노의 눈물이 이어졌다.

또 엄마는 결과물을 원하는 구나.

또 엄마는 나의 상태보다는 전문가의 의견을 먼저 묻는구나.

딸이 말하는 딸의 상태보다는 전문가가 말하는 딸의 상태가 더 듣고 싶은 거구나.

그래서 나도 더이상 못 참겠어서 터졌다.

내 우울증, 공황장애, 불안장애의 원인은 가족이라고.

지금까지 이 말만큼은 무덤까지 가져갈려고 했었다.

돈을 들여서라도 상담치료를 통해 내가 스스로 가족과의 거리를 두는 법을 배우려고 했었고

가족이, 특히 엄마가 상처받는 건 싫고, 바뀔 것 같지도 않아서 

나혼자 다 떠안고 가려고 집에서 나온 것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나혼자 해결하려고.

그런데... 그런데도... 

엄마는 전혀 갈피를 못 잡겠다는 듯 언제쯤 낫니 원인은 뭐라고 하니 라고 물으니

더이상 내 인내심이, 내 정신이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말했다.

가족때문이라고.

상담선생님께서 터질 게 지금 터진거라고 말씀하셨다고.

그래서 지금 이 문자도 울면서울면서 보내는 거라고.

그렇게 보내니

'상담선생님을 엄마가 좀 만나보면 안될까'

라는 문자.

나로 통해 듣는 것 보다는 전문가의 말을 더 신뢰한다는 걸로 밖에 안 들렸다.

내가 울면서울면서 문자한다고 했는데도

끝까지 본인의 의견은 피력하고야 마는 성격.

역시 사람은 한결같다.

이 모든 감정의 소용돌이가 날 미치게 만들고 있는데

뮤지컬은 시작하기 15분 전이었다.

입장을 해야했고 입장하고 나니 모든 게 다 나를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그럴 수 밖에 슬슬 아침약 기운이 떨어지기 시작할 때였고

거의 2시간 가량을 눈물콧물 빼면서 문자 답장을 했으니.

뮤지컬은 시작했는데

과호흡은 왔고

시야가 흐릿흐릿해져서 초점이 잘 안 맞았다.

나는 무대를 쳐다보고 있는데 누가 내 눈에 안개막을 친듯 했다.

시야가 완전치 않으니

더 불안해졌고

누가 내 심장을 계속 쥐락펴락하는 것만 같았고

당장이라도 누가 내 심장을 찌를 것만 같았다.

나를 그 상황에서 견디게 한 건 그나마 익숙한 뮤지컬이였기 때문이었지싶다.

그 다음 대사를, 그 다음 장면을 알기에, 그 다음 넘버를 알기에 

내가 놀랄게 없다는 걸 알기에.

그래서 그나마 그 정도였던 것 같다.

인터미션 때는 친구들에게 SOS를 쳤고

일하는 친구는 답장이 늦었고

그나마 답장해준 친구 O는 무리라고 느껴지면 나와라고 했다.

나도 고집불통인게

돈 아깝다고, 어차피 2부는 1시간밖에 안한다고

끝까지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2부를 마치고 나서 사람이 거의 다 빠지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서니 휘청거렸다.

팔과 다리에 힘이 없었고 나를 지지하고 있는 게 땅인지 아닌지 모를 정도로 감각이 없었다.

하루에 천당과 지옥을 동시에 맛 본 것 같았다.

아침부터 들떠서 드라이도 하고, 조용히 필사도 하고 좋았는데... 그저 좋은 하루의 시작이었는데...

오후에는 내가 지옥으로 떨어질 줄 몰랐다.

예상치 못했으니 충격은 더 컸으리.

그리고 바로 그 다음 날 아침은 마치 내가 5월달로 돌아간 것 같았다.

무기력의 끝을 달리던 그 때.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그 때로.

약을 먹어야 내가 그나마 산다는 것을 알기에

빈 속에 약을 집어 넣었다.

그리고 누운 채로 약이 날 일으켜주길 기다렸다.

1시간 정도 지나니 움직일 수 있게 됐다.

비참했다.

문자로 미친듯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내가, 약 없이는 일상생활이 안되는 내가.

그저 비참했다.